흔히 인간의 감정은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띤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대의 문화나 생활상을 반영하는 언어가 변화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도 시대에 따라 사라지고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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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자들은 인간의 기본 감정을 기쁨, 슬픔, 화남, 두려움, 놀람, 혐오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영국 퀸메리대 감정사센터(Centre for the History of the Emotions)의 토마스 딕슨 교수는 "200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 감정으로 분류되는 (영어)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대신 격노와 애정 정도를 구별하고, 도덕성을 평가하는 식의 언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멜랑꼴리'와 '노스탤지어'는 신체적 질병이었다
이유 없이 깊은 슬픔에 잠긴 느낌을 가리키는 '멜랑꼴리(Melancholy)'는 한국에서도 흔히 쓰는 말로 '우울감', 즉 심리적 고통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근세 시기 멜랑꼴리는 두려움에 따른 물리적 고통을 뜻했다.
멜랑꼴리는 체액 불균형의 한 종류였다
16세기까지 사람들은 피와 점액, 황담즙, 흑담즙 등 네 가지 체액(humor)이 균형을 이뤄야 건강할 수 있다고 믿었다. 멜랑꼴리는 흑담즙이 많은 사람에게 오는 일종의 질환이었다. 실제로 멜랑꼴리라는 명칭도 고대 그리스어로 멜랑꼴리아(Melancholia)로 불리던 흑담즙에서 따왔다.
감정사센터의 사라 차니 박사는 "당시 몇몇 사람들은 신체가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고 믿었는데, 이들은 자신이 깨져버릴까 움직이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프랑스의 샤를 6세는 타인과의 접촉으로 부서질 것을 두려워하며 옷에 아연 막대기를 꿰매놓은 일화로 유명하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감정을 뜻하는 '노스탤지어'도 18세기까지 신체적 질병의 하나였다. 현대에는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당시에는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심각한 병이었다. 주로 집을 떠나온 선원들에게서 발병했는데, 노스탤지어를 앓는 선원들은 단순히 집을 그리워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기력증과 알 수 없는 통증으로 고통받았다.
지금은 사라진 중세의 감정들
중세에 감정을 표현하던 단어들은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현대에는 쓰이지 않는 중세 말인 '아세디아(Acedia)'가 대표적이다. 이는 수도원에 사는 남성 수도사들이 겪었던 특정 감정으로, 절망과 무력감 등을 동반했다. 아세디아로 고통받은 수도사들은 공통적으로 영성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고 전해진다.
아세디아는 중세 수도사들이 겪던 신앙 생활에서의 위기를 뜻한다
사라 차니 박사는 "현대의 우울증과 비슷하지만 수도원에서만 겪을 수 있는 영적 위기감이라는 점에서 매우 구체적"이라고 설명했다. 세월이 지나 이는 기독교에서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가운데 하나인 나태(Sloth)로 대체됐다.
'프렌지'란 신체적으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화가난 상태
화가 난 상태를 이르는 중세 단어 '프렌지(Frenzy)'도 신체·물리적 구체성이 돋보인다. 이 감정을 느낀 사람들은 온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음을 내면서 폭력적인 상태가 된다고 한다. 차니 박사는 감정이 내면의 소리라고 믿는 현대인들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덧붙였다.
감정사센터의 토마스 딕슨 교수는 "옛 감정 단어들을 이해하면 다양한 감정과 분투하는 현대인들이 이를 명명하고 해석하고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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